오늘 아침 양치질을 하는데 나(에고)에 대한 피로감이 살짝 느껴졌다. 영혼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알아챈 것이다.
그런데 왜?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니 어제 저녁 페이스북 그룹 @용호비결공부방에 댓글로 너무 많은 얘기를 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신호는 과거에도 수없이 있었을텐데 그걸 알아챘다는 건 각성 능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증거다. -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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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다음 주 교육정보화 포럼, ' 융합파라다임과 미래 신산업'이란 주제의 프리젠테이션 내용 중에 이런 부분이 눈에 띄네요. 비지니스 생태계가 가치중심으로 변화하는데 '감성'과 함께 '영혼', '全人' 등의 요소도 아주 작게, 살짝 주목을 받네요.^^  전 비지니스 세계에서 이런 개념의 등장이 더 근원적이고 큰 차원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필립 코틀러 박사의 마켓 3.0에서 '영혼'이 언급되는데 그 영향을 받은 건가요?




출처 : '융합파라다임과 미래 신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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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이 책 저 책 보다가 방 한켠에 치워둔 블립을 발견하고 읽다만 부분을 넘겨 읽다가... 기계적 세계관의 잔재가 아직 잠재의식에 깔려 있다는 생각에 스크랩한다.

대흠.

What the 블립 do we know!?

재결합의 가능성 p38

 데카르트가 과학의 기본 법칙으로 세운 정신과 육체의 분리는 수백 년 신봉되었고 이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다. 시람들은 마음 밖의 세계는 예측 가능한 기계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생명력이 없는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게 정신이나 영혼이 없는 세계관 덕분에 인간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살아있는 자연과 분리되었다. 더구나 이런 세계관은 이런 세계관은 인간이는 다른 존재나 행성의 미래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얼마든지 착취할 수 있다고 하는 구실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지구는 고통을 받았다. 자원들은 강탈 당하고 순수함을 빼앗긴 채 우리의 오염된 고향은 사멸의 벼랑 끝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후 과학은 물질 우주를 더 깊이 파고들다가 열려있는 신비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20세기 초반, 알버트 아인쉬타인,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 베르그, 어윈 쉬뢰깅거 등 양자 이론의 창시자들에 의해 물질주의의 벽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물질을 깊이 파고들어 간 결과 물질이 측량할 수 없는 에너지로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갈리레이의 말대로 그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려고 해도 우주는 전혀 물질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질적인 우주는 본질적으로 비물질적이며, 에너지 자체보다 훨씬 미묘한 장으로부터 나온다. 그 장은 물질이 아니라 정보나 지성, 의식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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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가능태 공간은 정보체(Informational Structure)이다.  그것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의 다양한 가능태들이 들어 있는 무한한 정보장이다. 가능태 공간에는 과거에 존재했고 지금 존재하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가능태 공간은 시간과 공간 속을 움직이는 물질의 형판, 혹은 좌표시스템의 역할을 한다. 영화 필름에서 처럼 과거와 미래는 영구적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를 보여주는 프레임들의 연속적인 전환에 의해서만 시간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세계는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물질적 현실과, 지각의 한계 너머에 있지만 여전히 객관적인 비물질적 가능태 공간, 이 두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이 정보장에 접속하는 것이 원리상 가능하다. 바로 거기서 직관적 지식과 투시 능력이 나오는 것이다. 마음은 원래 새로윤 것을 창조할 수 없다. 마음은 낡은 벽돌로 새로운 모양의 집을 지을 수 있을 뿐이다. 두뇌는 정보 자체를 저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태 공간의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주소와 같은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과학적 발견과 예술의 걸작들은 마음이 영혼을 통해 가능태 공간에서 얻어온 것이다.

 꿈은 일반적인 뜻으로 말하는 그런 종류의 '환상'이 아니다. 마음은 꿈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 본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게 되는 것들은 실현된 가능태들이다. 꿈속에서는 우리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태들을 본다. 즉, 꿈은 가상의 시나리오와 무대장치를 가진 시나리오들인 것이다. 꿈은 우리에게 과거에 있었던 것들이나 미래에 있을 수 있는 것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꿈은 가능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영혼의 여행인 것이다.

출처: 트랜서핑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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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방울토마토

사노라면 2010.06.28 18:56
올봄에 초등학교 5학년 막내가 아파트 화단에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어 줄기가 어느 정도 자랐는데 비바람이 불어 그만 쓰러졌다. 아들놈이 방울토마토 죽었다고 울고불고 하여 비가오는 가운데 비옷을 입고 나가 나무 가지와 막대기를 주워 힘없는 줄기들을 묶어 일으켜 세웠다.


지난 비바람에 가지 일부와 열매 몇개를 잃었는데 지금은 무럭무럭 자라 위아래로 제법 소담한 열매들을 맺었다.
아들도 나도 아파트를 드나들 때마다 기특한 방울토마토 나무가 잘 자라는지, 별 일 없는지 한번씩 살펴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그런데 방울토마토와 인연을 맺으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미묘한 느낌이 생겼다. 트랜서핑을 하면서 영혼에 대한 느낌을 자주 떠올린 덕분인지 감각이 좋아진 것 같다. 나무 주변의 잡초들을 밟는 것 조차도 부담스럽다. 나무 주변에 앉아 있을 여건이 되면 방울토마토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생명에 대한 보다 깊은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도올 김용옥이 TV 강연 중 언급한 자신의 하버드 스승, 화이트헤드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풀 한포기 이상의 신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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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요즘은 마인드컨트롤 수련 과정은 잠시 접어 놓고 영혼 느낌의 경계를 들락거리며 산다. 그만큼 영감이 살아나고 있다는 말이다.

마케팅의 대부라 불리우는 필립 코틀러 박사의 '마켓3.0'이란 책을 보고 있는데, 그는 다가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장에서 '영혼'을 중요한 키워드로 강조한다.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아서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당연히) 영혼을 깊이로 접근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영혼의 실체와 맞닿아있다는 느낌은 든다.
이제 비니지스에서 본격적으로 영혼을 거론하기 시작한다. 아래 바딤 젤란드의 말이 맞다면 앞으로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은 마음이 영혼의 '미약한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데서 시작할 것이란 생각이다.

대흠.

가능태 공간은 하나의 정보장 또는 에너지 매트릭스, 곧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야 할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모델이다.  매트릭스의 특정 섹터에 동조된 에너지가 이 섹터를 '조명할' 때, 이 모델은 물질의 형체를 취하며 현실화된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일어난다. - 물질화 되기 전의 형태로 있을 때에도 이 정보를 이용할 수 있을까? 말을 바꿔서, 우리는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날마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식은 가능태 공간에서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잠재의식은 정보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이 정보장이 바로 예감, 직관, 예견, 예언, 새로운 발견 그리고 예술의 걸작이 나오는 곳이다.
 정보는 의식 속으로 들어갈 때, 외부 데이터에 대한 해석으로서 바깥세상으로부터 들어가거나, 혹은 직관의 차원에서 잠재의식을 통해 들어간다. 정보장에 기록된 데이터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운 객관적 정보이다. 사시리 마음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 그것은 해석, 곧 '지식'으로 바뀐다. 모든 생명체는 사실을 자신의 해석을 통해 인지한다. 병아리는 인간의 방식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이해한다. 심지어 사람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사물을 저마다 서로 다르게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식이란, 정도는 다를지언정, 진실의 왜곡된 형태에 지니자 않는다.
 정보장의 데이터는 복잡한 에너지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에너지체는 물질로 하여금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잠재의식(영혼)이 정보장으로 부터 데이터를 받아 들이면 의식(마음)이 그것을 소리나 상징으로 번역한다. 이것이 새로운 것 - 음악, 미술작품 등 사람이 직접적으로 보거나 알 수 없는 모든 것 -이 창조되거나 새로이 발견되는 방식이다. 또한 직관적 지식과 예감이 일어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 리얼리티 트랜서핑 1권, 가능태 흐름 -

의식과 관련되는 모든 것을 '마음'이라 하고 잠재의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영혼'이라 부르기로 하자. 영혼이 말해주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마음이 이해했더라면 인류는 아주 오래전에 정보장에 바로 접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의 문명이 얼마나 높이 진보했을지는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그러나 마음은 영혼의 말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의 주의는 바깥세상의 대상이나 대상에 대한 생각과 감정에 끊임없이 사로잡혀 있다. 내면의 독백도, 마음의 통제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멈추는 일이 없다. 마음은 영혼의 미약한 신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사로잡혀 있는 생각만을 권의적인 목소리로 끊임없이 되뇌인다. 마음은 '사고할' 때, 물질화된 섹터의 가시적인 대상들을 그 성질에 따라 분류하여 범주화한다.  달리 말해서, 마음은 사람들 사이에 보편화되어 있는 '이름;의 도움을 받아서 사고한다. 즉, 상징기호, 언어, 개념, 도식, 규칙 등이 그것이다. 마음은 모든 정보를 적절한 이름표가 붙은 서류함에 집어 넣으려 애쓴다.  세상 만물에는 이름과 꼬리표가 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1권 가능태 흐름 -

이쯤에서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화두를 띄워보자.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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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4월 3일(토) 8차 워크샵이 있네요.
아래 워크샵 후기는 미내사 사이트에서 퍼 왔습니다.

대흠.

매 순간 영혼이 기뻐하는 선택
별빛샤워

책 <리얼리티 트랜서핑>을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부터 어쩌면 저는, 인생이라는 험난한 파도에도 쓰러지거나 좌절하지 않는 멋진 트랜서퍼가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발행된 1권부터 3권까지를 2번을 정독하고 나니, 더 이상의 자기개발서는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에서 말하는 깊은 깨달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이 책에 나온 개념들을 잘 이해하고 실생활에서 적용한다면 정말 내 자신이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살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지는 약해지고 제가 평소 해오던 심상화 방법이 맞는지 안 맞는지 등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뭔가 영혼의 불편함을 느끼던 찰나 정말 신기하게도 우편함에 도착한 미내사클럽 잡지를 펴자마자 한번에 이 "트랜서핑 체험 기초과정 워크샵" 공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명처럼 이끌렸고 이렇게 후기까지 쓰는 영광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워크샵은 미내사클럽 강의실에서 약 8시간 동안 트랜서핑 책의 번역자이며 <한국어 꺼라, 영어가 켜진다> 등의 저자이신 박인수 강사님의 강의로 진행되었습니다. 트랜서핑의 기본원리에서부터 펜듈럼이 무엇인지, 중요성의 개념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한 검은 원 명상을 통한 의식수준 높이기, 올바른 심상화의 방법, 내안에 깊이 박혀있는 부정적 감정들의 제거방법, 미운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는 기술 등 주옥같은 마법의 기법들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저는 강의시간에 강사님의 도움으로 제 안에 있는 두려움, 꿈이 이뤄지지 않을 것에 대한 그 두려움을 단 3분 만에 없앨 수 있었습니다. 정말 누구나 배우면 할 수 있는 손쉬운 기법으로 제 마음의 상처를 지울 수 있어서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워크샵 후에도 저는 안 좋은 기분이 들거나 감정적으로 매우 힘든 순간이 오면 이날 배운 마법을 사용하고 있답니다.
나의 형상을 보여주는 테두리,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 자연들이 가지고 있는 테두리… 그 모든 테두리들이 없어진다면 결국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강사님의 말씀을 듣고 저는 내가 바로 우주고, 우주가 곧 나 자신이며, 내가 곧 신이고, 그렇다면 내 이웃도 신이며 내가 남을 사랑하면 남도 나를 사랑하고 내가 미움이라면 남도 곧 미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 순간 내 영혼이 기뻐하는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집중, 즐거운 심상화 과정 등을 통해 저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것 같은 기분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저의 심장이 아주 많이 두근거립니다. 또한 제3의 눈으로 항상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관찰하며 순간순간 모두 깨어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됩니다. 제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3차원 세상과 이번 8시간의 이 워크샵을 통해서 맛본 또 다른 차원의 세상, 저는 이제 진정 영혼이 기뻐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앞으로 저는 지구별에서 멋진 마법사로 살아가기 위해 조금 더 마음공부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긴 시간 동안 온화한 미소와 함께 좋은 강의를 들려주신 박인수 마법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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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벅샷님의 블로그 포스팅 '결심, 알고리즘' 읽고 댓글을 달다가 욕심이 생겨 내 블로그에 올리고 트랙백을 달기로 마음을 바꿨다.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신 벅샷님과 GatorLog 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
거대 기업에서도 '실행'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훌륭한 기업 조차도 계획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하물며 개인은 오죽하겠습니까.



조금 과학적이라 할 수 있는 '마인드컨트롤'의 관점에서 보면 의식이 지어낸 생각이나 계획이 잠재의식에 프로그램되지 않으면 작심삼일이 될 가능성이 높죠.

나름 논리적이긴 하나 매우 비과학적이라(우리 큰딸래미 왈^^) 할 수 있는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 말하는 내부, 외부의도가 생각나네요. 전자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욕망이고 후자는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 미지의 힘. 이 외부의도가 내부의도의 소산인 생각(욕망)을 가능태 공간(우주의 에너지 정보장)의 현실화된 섹터로 인도를 함에 따라 실현이 된다고 합니다. 외부의도를 조종하려면 하지않으면서 해야 하는(無爲의道)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걸 가능케 하는 마음상태를 겸허함(혹은 깨어있음)이라 풀어볼 수도 있겠네요.

"해 결심은 겸허하고 유연하고 다중적이어야 한다."는 벅샷님 말과 매칭이 일어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와이즈맨 박사는 새해 결심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결심을 딱 하나만 세우고, 그 세운 결심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라는 조언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새해의 결심을 하나만 세워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있단 말인가?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부담 혹은 인지 부하(cognitive load)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지 부하라는 것은 어떤 일(과제)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정신적 노력의 양을 말한다.

원문 출처 :
새해 결심과 인지적 부하

또한 마음과 영혼이 의기투합(?) 하면 인지부하가 'Zero'에 가까워 질것으로 봅니다. 인지 부하가 작을수록 그 만큼 적은 에너지로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겠지요.

외부의도를 움직여 성공의 물결을 타려면 마음(의식)과 영혼(잠재의식)이 서로 합의(일치)를 이루어야 하는데 의식이 영혼에게 "선언적이고 강압적이고 단선적"으로 지시할 때는 합의가 아닌 명령이 되어 일이나 계획이 성공하지 못하게 되지요.^^

좀 더 다듬고 보완을 하면 현대 경영학(Tangible)과 에너지장을 다루는 기술인 고대 신비지식(Intangible)을 접목할 수 있는 포인트가 하나 생길 것 같기도 합니다.


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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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한 이십년 지났나... 내과의사를 하는 고등학교 동창에게 물었다.
"미래의 병원에는 과가 하나 더 생겨야 하지 않나?"  
빙의치료과? 이름을 뭐라 부르던 ...
의사들이 진단을 못하는 원인모를 병들이 많다.
이런 병을 가진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
당시 그 친구는 "그런 걸 연구하는 의사 모임이 있다." 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전생,영혼 등 신비하고 비과학적인 얘기라는 편견은 잠시 접어두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김영우 박사의 신비한 현상에 대한 진지하고 과학적인 자세. 
 
90년대 [전생여행]이란 책이 알려지면서 귀신쫒는 의사로 유명해진 김영우 정신신경과 박사가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절판)에 이어 내 놓은 책으로 빙의(귀신들림)와 다중인격장애 등 특수한 정신 질환과 최면을 통한 치료에 대해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영혼의 최면 치료 : 내 안의 또 다른 나

신비한 현상을 다루면서 과학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 김영우 박사.

빙의라는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을 파악하고 치료자의 입장에서 대응을 하는 그를 사람들은 종종 귀신이야기로 포장을 하여 뭇사람의 말초적인 호기심을 사려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알려지지 질병으로 그늘 속에서 고생하거나 무능한 무속인들을 찾아 다니며 돈을 쏟아 붓고... 

그가 이런 류의 책을 써낸 이유는 빙의 현상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 궁극적으로 입 밖에 내놓지도 못할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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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뇌과학의 함정

Others 2009.08.24 13:21
그저께 고3 큰 딸아이와 논쟁을 벌였습니다.
딸아이는 다분히 유물론적, 과학적 증거주의 등에 빠져 있더군요.
물론 저도 제 생각이 옳다는 걸 입증할 수 없고 단지 직관적인 관점에서 아빠가 옳다 이야기 하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네요. ㅜㅜ

"모든 것은 뇌의 화학적 전기적 작용에 의한 것이고 육체의 소멸과 함께 모든 것은 사라진다."
영혼 등의 현상은 뇌 속의 화학적 작용일 뿐...

얼마 전에 우리 직원이 읽고 있는 유시민씨 수필집을 봤는데 종교란 제목의 컬럼에서 자신의 유물론적 입장으로 확실히 금을 긋더군요.나는 의인화 된 신(저도 그건  믿지 않습니다.)도 믿지 않으면 전생 같은 것도 믿지 않는다며...
물론 얘기의 끝은 '장로 대통령'에 화살을 겨눈 것이지만... 역시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시민씨의 깨어있음이나 영민함을 볼 때 꼭 그럴 것이라 단정지은 것으로 보진 않습니다. 

저는 제 아이가 유물론이나 '오직 객관, 과학' 등에 빠지는 걸 경계합니다.
시적인 상상력, 은유 등을 무시하면 매우 답답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제 딸아이가 실토를 하더군요. 자기가 꼭 그런 과학만능주의 주장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암튼 저는 목에 칼이 들어오면 아니라고 할 지언정 제 믿음은 확고 합니다.
육신이 전부는 아니다.

제 아이들은 저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할머니와 똑같다고 합니다.
믿음이 강해서 너무 주장을 하다보면 그런식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건 아는데...

봉우 할아버지 처럼 실없는 소리 하는 자를 아무 말없이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 보기만 해도 좋았을텐데 ...
아니면 "왜 사느냐 묻거든... 그냥 웃지요." 이런 전략을 폈어야 했는데...

아직 수행이 부족해서... ^^

그런 가운데 오늘 아침 TV에서 재미난 책을 소개하는군요.
읽지않고 쌓아둔 책 재고가 줄어들면 사봐야겠습니다.


대흠.

뇌과학의 함정



출처: MBC News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 또 행동은 두뇌활동의 일부라는 것이 뇌과학자들 사이의 정설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정설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번 주 신간 배선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각하고, 화내고,
사랑하고, 심지어는
자아를 의식하는 것까지
과학은 그 모든 것이
두뇌의 활동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나, 철학자이며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지난 10년간 뇌과학이 발견하고
입증한 것은 사실상 전무하다며
'뇌를 연구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강조합니다.

악기가 음악을 연주할 때
악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듯
뇌를 움직이는 인간의 본질은
뇌 속에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뇌는 인간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며 인간 고유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삶의 맥락, 주위 환경과의 연관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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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써 놓고 나서 보니 허점이 많이 보이는 것 같네요.^^
그래도 그것도 한때의 생각인데 버릴 수 있나요.
맞으면 맞는대로 틀리면 틀린대로...
이 광활한 우주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을 그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오늘 대흠.
 
트위터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좀 섭섭한 소릴지 몰라도 며칠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 보고 느끼는 건...
영감이나 영적인 울림이 없는 자잘하고도 수많은 트윗들을 본다는 것은 충전없는 소모적인 즐김이란 것이다.

물론 트위터란 거대한 흐름이나 연결의 플랫폼이 주는 거시적 영감은 있을지언정...
 
이건 어쩌면 내가 트위터에 적응을 못하고 소외를 당하고 있어서 은근히 부아가 난 것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안했더라도 내가 한 말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트위터를 안 한다는 말은 아니다.
몸에 해롭다고 담배를 안피우는 건 아니듯이... ^^

어제 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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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흠
출처 사이버 문학광장  필자 장명진

  정말 오랜만에 만점을 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마이클 뉴턴의 <영혼들의 여행> 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책은 내 인생을 뒤바꿀 만한 힘을 지닌 책 3위 정도에 랭크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대학교 2학년 시절 수강했던 '환경과 문학' 수업의 강사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어서 항상 읽어보려고 벼르던 책이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이 책을 구입해서 서가에 꽂아두었더랬는데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신비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마치 내가 지금 이 책을 읽기에 딱 알맞은 시기에 와 있고, 이 책을 지금 읽기 위해 그 동안 다른 독서체험들을 해왔다는 느낌이다.  

 나는 그 동안 인간과 세계의 본질,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개인적으로 열심히 탐구해왔었다. 유교, 도교, 불교,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거북섬 원주민 종교 등등 세계의 모든 종교현상이나 문화현상 등을 탐구하며 지구의 여러 사상의 정수들과 만났었다. 그러면서 사실 이 지구의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는 어떤 단일한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매우 유사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들 종교들은 어떤 가느다란 실로 이어져 있는 것이 틀림없는데, 그 실이 무엇인지 모호했다. 그 모호한 실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영혼들의 여행>이다. <영혼들의 여행>은 지구상의 모든 종교적, 철학적 문제들을 투명한 실로 엮어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인간은 왜 지구에 태어나는 것인가 하는 의문들을 <영혼들의 여행>은 단호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풀어간다. 마이클 뉴턴은 최면치료사로 전생퇴행체험을 통해 피험자들이 새로운 존재로 환생을 하기 이전의 세계 즉 영혼들의 세계에 대한 수 많은 진술을 듣게 된다. 처음에는 그들이 지어내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수 만 명의 서로 다른 사상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거의 동일한 표현으로 묘사해내는 '영혼들의 세계'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명백히 실재하는 세계였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소리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신흥종교의 하나가 아닐까 라고 냉소적인 표정을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저자인 마이클 뉴턴과 나는 결코 종교적이거나 맹목적인 사람이 아니다. 우리 둘은 모두 종교 보다는 과학을 신뢰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의 사람이다. 실제로 나는 지구의 종교들에게서 추출한 여러 정보들을 과학적으로 해석해보기 위해 여러 관련 분야를 공부했다. 최신의 뇌과학부터 다윈의 진화론까지, 그리고 뉴턴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론, 최근의 초끈 이론에 이르는 생물학, 물리학, 천문학의 이론들을 살펴본 결과 그 모든 인간의 생각들이 몇 천 년전 아즈텍인들이나 노자, 플라톤 등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계가 아주 작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은 이미 기원전에도 있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과 이용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최신의 양자론에서는 아주 미세한 입자는 두 개 이상의 공간에 공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빛이 파(wave)의 성질과 입자성을 함께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뇌과학에서는 인간의 뇌에 있는 정보와 감정의 트렌지스터 '변연계'를 주목한다. 사람의 눈동자 저 깊은 곳에 존재하는 변연계는 세계와 대상으로부터 전해지는 전기적 신호를 감지하여 뇌에 명령을 내리고, 감정을 일으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즉, 인간의 마음이란 단순한 화학적 물질의 이동으로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외부의 어떤 신호에 의해서 즉 관계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는 것이다.

  <영혼들의 여행>의 저자 뉴턴도 그 이름답게(?)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영혼들의 세계'에 대해 과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뉴턴의 임상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곧 유체이탈이 일어나 영혼들은 자기들이 살던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 세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저승이라든가, 천국과는 다른 곳이다. 영혼들은 아주 미세한 빛의 알갱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몸을 떠난 영혼은 잠시 방황하다 곧 자신이 영혼들의 세계로부터 왔음을 기억하고 고향으로 귀향을 한다. 이 고향은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난 곳에 있으며 환한 빛으로 둘러싸인 세계이다. 그곳은 일정한 모습이 없고 영혼이 상상하는대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 가면 원래 함께 그곳에 살고 있던 고향의 친구들이 환한 웃음으로 영혼을 반겨준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영혼은 자신이 죽었다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그곳에서 전생에 함께 했던 친구나 가족, 배우자의 모습도 모두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자기가 지구에 무언가를 배우러 자신의 선택에 의해 잠시 다녀왔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영혼들의 세계는 일종의 학교 같은 곳이다. '학교'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두드러기를 일으킬 분도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혼들의 학교는 지구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이곳은 학교 건물도 없고, 교장선생님 같은 관료체계도 없으며, 무엇보다 수학이나 영어 같은 곳을 배울 필요가 전혀 없는 곳이다. 말하자면 그곳은 넓은 들판에 아름다운 꽃들이 방긋방긋 피어 있고 깔깔거리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생활하는 곳이다. 그들은 그렇다면 어떤 공부를 하는가? 그들의 과목은 사랑, 용서, 용기, 현명함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교과서는 바로 인생이다. 그곳에는 커다란 도서관이 있고, 거기에는 지구는 물론 우주 모든 생명의 세계에서 존재했던 인생에 관한 책들이 가득하다. 영혼들은 친구들과 놀다가 그곳에 가서 인생의 책들을 들여다보며 자기가 전생에 살았던 인생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를 다시 되새겨 보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생으로의 환생을 준비하게 된다.  

 영혼들은 20명 정도가 모여 일정한 그룹을 이루고 있으며 그 그룹은 또 5명 정도의 소단위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가장 작은 단위의 5명은 가장 친한 영혼들로 그들은 서로 긴밀한 유대감을 지니고 있으며, 친구가 지구로부터 돌아오면 제일 먼저 마중 나와 반겨준다. 그리고 대개는 함께 같은 세계에 환생을 해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울 메이트'는 바로 이 그룹의 멤버인 경우이다.(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영혼들은 마음의 레벨을 가지고 있어서 레벨에 따라 저마다 다른 빛깔로 빛난다. 가장 성숙도가 낮은 어린 영혼은 새하얀 빛을 발하고, 점점 성숙해질 수록 붉은빛, 초록빛, 푸른빛을 거쳐 원숙한 경지에 다다르며 보랏빛이 된다고 한다. 보랏빛이 된 영혼은 거의 더 이상은 지구나 다른 세계로 환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이클 뉴턴도 실제로 그런 영혼을 지닌 사람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갓 태어난 어린 영혼들은 지구나 다른 세계로 환생해서 인생을 경험함으로써 성숙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문제 상황과 고통을 현명하게 대처하고 인내하는 것을 통해 영혼의 성숙을 이룬다. 그러나 어린 영혼들은 그런 문제를 잘 견뎌내지 못해 쉽게 자살로 인생을 포기하거나 잘못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영혼들은 지구에서의 생을 끝난 뒤 영혼들의 세계로 돌아가면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이 놀림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왕따 같은 분위기는 전혀 아니고 서로 끈끈한 유대감을 지닌 채로 진심어린 격려와 위로의 말을 동반한 따뜻한 느낌의 장난이다.

  영혼이 지구로 오는 방법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좀 다르다. 영혼이라는 몸체가 있어서 그 물질이 지구로 와서 우리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환생을 할 준비가 되면 환생을 하는 집으로 보내져 다시 어둠의 터널을 지나 갓 태어나려는 아기에게로 가는데 그 경우에도 영혼은 여전히 영혼들의 세계에서 존재한다. 많은 피험자들은 그 모습을 잠을 잔다는 형식으로 표현했다. 영혼이 잠자는 동안 꾸는 꿈이 곧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문득 장자가 생각나지 않는가? 영혼이 잠자는 동안 우리는 인생을 살고, 우리가 잠자는 동안은 영혼은 잠시 깨어나서 영혼의 세계를 돌아다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양자론에 의하면 미세한 입자는 두 개 이상의 공간에 공존할 수 있다. 자 여기에 중간에 칸막이가 설치된 상자가 하나있다. 뚜껑을 열기 전에는 A칸과 B칸에 모두 하나의 똑같은 구름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그런지 보려고 우리가 뚜껑을 열어보는 순간 구름은 A칸이나 B칸 둘 중의 한 곳에만 존재하게 된다. 왜 그럴까? 왜 그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것이 미세입자의 속성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영혼은 빛의 알갱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영혼의 세계와 지구 두 개의 공간이 있다. 존재는 두 세계에 공존하고 있다. 이 순간 우리가 영혼을 보려고 할 때는 지구의 몸이 사라지고, 지구의 몸을 보려고 하면 영혼이 사라지는 것이다. 즉, 우리는 둘 중의 하나 밖에 볼 수 없다. 인도의 명상가들은 이런 것을 늘 경험하며 산다. 소위 유체이탈이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자신의 본질에 다가가 미세한 영혼의 빛 알갱이를 관찰하려고 집중을 하면 자신은 지구의 몸의 존재가 아닌 몸을 벗어난 영혼의 존재로 존재하게 된다. 그때는 자신의 영혼을 제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양자론과의 이 관계는 내가 생각해낸 것인데 아직은 모순점이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좀 더 연구를 해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엉성함에도 불구하고 양자론에 의해 영혼이 두 세계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입증 가능하다.

 영혼은 이런 방식으로 환생에 환생을 거듭하며 성장해 간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아직 명확하게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영혼들은 영혼들의 세계 가장자리(영혼들의 세계는 원형이다. 원 둘레의 가장자리를 지칭)에 태어나서 어떤 그 세계의 중심 방향으로 가려는 속성이 있다. 그 방향에는 이른 바 우리가 창조주, 조물주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다. 그러나 이것도 명확한 표현은 아니다. 영혼들의 말에 의하면 이 중심에 있는 무엇은 인격적인 차원의 무엇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이 무엇을 거북섬원주민의 표현을 빌려 '위대한신비'로 지칭하도록 하겠다. '위대한신비'는 사실 공간적으로 중앙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위대한신비'는 영혼들의 세계 자체이기도 하다. '위대한신비'는 따스한 빛의 커튼으로 영혼들의 세계를 감싸고 있다. 그렇다면 '위대한신비'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빛이 파의 성질을 가짐과 동시에 입자로도 존재한다는 양자론의 이론으로 설명가능할 것이다.

  양자론에 의하면 빛을 파로서 관찰할 때는 빛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입자로서 관찰할 때는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위대한신비'가 있는 곳을 중앙으로 설정한다면 '위대한신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모르게 된다. 그러나 '위대한신비' 항상 움직이고 영혼들을 보듬어주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위대한신비' 가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면 '위대한신비'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게 된다. 한 곳에 존재하기도 하고 모든 곳에 있기도 한 것. 그것이 '위대한신비'가 아닐까. 사람들이 신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우리들 마음 속에 모두 있다고도 믿는 것처럼. 이것을 모순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은 매우 과학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영혼은 성장하여 푸른빛이나 보랏빛을 발하는 높은 레벨에 이르면 창조하는 기술을 배운다고 한다. 에너지를 모아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들을 서로 결합시킴으로써 바위나 씨앗 같은 것을 만드는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아주 높은 레벨의 영혼은 '위대한신비'를 도와 지금도 우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부분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아주 높은 레벨의 영혼들의 진술이 필요한데 그들은 더 이상 지구에 환생하지 않으므로, 창조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양은 끊임없이 존재를 몸과 영혼으로 이원론적으로 나누고 불변하는 영혼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온 반면 동양은 존재를 일원론적으로 파악하고 몸과 정신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유기적인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보아왔다. 동양학자는 서양을 까고, 서양학자는 동양을 까지만 나는 이 둘이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도망가기 쉬운 양비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의 생각에는 동서양의 생각을 모두 합칠 때 비로소 완전한 존재에 대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은 지구라는 공간에 한 해서는 일원론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영혼의 세계까지 포함한다면 이원론적으로도 존재가 가능한 것이다. 서양의 말처럼 영혼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지만 영혼이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몸을 기반으로 해서 살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영혼은 서양의 믿음처럼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해 나가는 존재이다. 매우 복잡한 이야기지만 이 영혼들은 또한 개체이면서 '위대한신비'의 에너지의 일부이기도 하다. 영혼들 각각 개체이면서 모두가 하나로 이어진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정말 알쏭달쏭한 이야기지만 이런 생각은 동양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동양에서는 모든 존재가 연관된 인드라망의 사슬로 이어져 있다고 본다.

  서양의 개인주의와 동양의 공동체주의는 서로 정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존재는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이고, 공동체이면서 개인이다. 존재는 이원론적이면서 일원론적으로 움직이고, 일원론적이면서 이원론적으로 사고한다. 이 모순들은 마치 양자론의 모순과도 같다. 어느 하나를 관찰해서 취하면 어느 하나가 사라지고 마는. 사실 인생의 모든 선택들의 모습도 이과 다르지 않다. 어느 한 곳에 주목하면 어느 한 곳은 사라진다. 우리는 이 모두를 한꺼번에 볼 수는 없을까. 뚜껑을 열고 굳이 확인을 하고 어느 하나의 정답을 내리지 않고, 있는 진실 그대로 모두 받아들여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공자는 이미 이러한 방법을 익힌 성인이었다. 공자는 아마도 보랏빛 영혼이 아니었을까. 공자는 내가 말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체를 두루 보고 이해하는 방식을 이른바 '중용'이라고 말하였다. 쉽게 생각하듯이 중용은 이것과 저것의 중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중용'은 원의 중심에 서서 그 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360도로 돌아가며 두루 살피는 태도를 이르는 것이다. 곧 '전관(全觀)'을 말하는 것이다. 영혼들은 어쩌면 이 중용을 배우기 위해 환생에 환생을 거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을 바꿔 예수의 '사랑', 싯다르타의 '연기', 노자의 '무위' 도 그 근본은 공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많은 고난의 순간을 맞닥뜨린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은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해 이겨내고, 어떤 이는 편한 길을 찾아 도망친다. <영혼들의 여행>에서 영혼들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그 숱한 고난을 마주하고 이겨내기 위해 지구로 온 것이라고, 그 아픔과 상처, 슬픔으로부터 무언가 배워가기 위해 이 힘든 세계로 자청해 왔다고. 세계의 많은 종교는 '지옥'이라는 개념을 발명해내어서(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 개념은 기독교나 유대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토속종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악마'의 개념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탄 루시퍼의 이야기도 그 뿌리는 기독교에 있지 않다.)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어 자신들의 종교를 선전하고, 자신들의 교리에 맞는 삶을 강요한다. 그러나 영혼들의 말에 의하면 영혼들의 세계에 지옥은 없다고 한다. 다만 그곳은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는 곳이며 엄마의 품속 같은 따스한 곳이라고 한다. 자살을 하고 일찍 지구로부터 돌아온 영혼들도 다독여주고 위로해주며, 지구에서 살인 같은 나쁜짓을 한 영혼도 반성의 기회를 주고 나쁜버릇을 정화시키는 일만하고 다시 영혼의 고향으로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나는 생각했다. 아, 그렇다면 지옥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아닐까? 그럼, 여기가 지옥이니까 우리는 빨리 여기를 벗어나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엉뚱하게도 자살이 가장 빠른 속행편이 될 것이다. 헌데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영혼은 인생에서 배워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똑같은 고통을 겪으며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를 다녀간 영혼은 모두 다시 지구로 돌아와야 하는데 지구가 언제까지나 지옥으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지구는 영혼들의 수련장소로는 알맞겠지만 영혼들의 휴식장소로는 꽝인 곳이 되겠지.

  우리가 보랏빛 영혼이 되어 싯다르타처럼 윤회를 끝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구인으로서 살아가는 고통을 더 이상 겪지 않으려면 결국은 이 지구를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천국에 의지하고 천국에 돌아갈 날만을 그리며 사는 것보다 이 지구를 천국으로 행복한 영혼의 휴양지로 만드는 것이 좀 더 근원적으로 지구 생명체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길일 것 같다.

  나 역시 짧은 생을 살다가 언젠가는 다시 따스한 고향, 영혼들의 세계로 돌아가겠지만 그때까지는 이 지구를 행복한 별로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으다. 나의 영혼은 아마도 지구를 무척 사랑하는 영혼인가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마음이 한결 푸근하고 여유로워지게 되었다. 지옥과 죄와 벌을 말하는 종교는 인간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지만, 용서와 화해, 그리고 진정한 배움이 있는 '영혼들의 세계'는 내가 이 세계에서 마음껏 내 꿈을 실현할 용기를 준다. 이 지구에서 아무리 꿈의 날개가 꺾이고, 상처를 받고, 절망을 한다하더라도 그곳에 가면 모두 이해받고, 그런 시도들이 칭찬받을 수 있다면 나의 진심을 온전히 이해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이 지구에서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내 의지로 이 지구에 왔고, 이 지구에 도움이 되겠다는 내 영혼의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내가 떠나왔던 고향을 요즘 종종 상상한다. 그러면 따스한 햇살이 내 몸 구석구석의 세포를 씻겨주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파랗게 맑아진다. 가슴 속에 투명하고 따스한 고향을 하나 심어두고 싶은 사람은 꼭 <영혼들의 여행>을 읽어보기 바란다. 책을 덮고 나면 당신은 분명 인생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2006. 8/3. 멀고느린구름.(장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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